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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4주완주] 핸즈업 혼성농구클럽 4기

마스터 김한성 선생님 은퇴 후 여러 곳에서 지도자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대회 참가 가능한 정도의 실력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기본기와 실력뿐 아니라 체력을 늘리고, 평생 스포츠로 농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지도하겠습니다. 포지션 : 가드, 포워드 - 2015 남녀대학농구리그 챔피언결정전 1위 - 2015 남녀대학농구리그 정규리그 1위 - 2015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1위 - 2014 U-18 청소년국가대표 상비군 24인 선발 - 2013 제94회 전국체육대회 경기도 대표 -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농구부) - 호계중, 안양고 농구부 김수진 선생님 팀경기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고 오랫동안 농구를 할 수 있도록 기본기와 팀플레이, 트레이닝 방법 등을 자세히 지도하겠습니다. 포지션 : 슈팅가드 - 2019 이상백배 [한일 대학농구 대표 선발](http://yna.kr/AKR20190429107100007?did=1195m) - 2019 대학리그 여대부 3점슛 수상 - 용인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농구부) - 송현초, 인성여자 중, 고등 (농구부) --------------------------------------------------------------- 목표 - 농구의 기본기를 재정비하고 본인에게 맞는 기술 성장 - 운동능력과 동시에 체력 기능 향상 --------------------------------------------------------------- 플레이 소개 핸즈업 농구클럽은 페이플레이를 바탕으로 즐농하기 위한 팀입니다. 함께 즐겁게 어울려서 운동할 수 있는 농구 덕후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함께합니다. 핸즈업 농구클럽을 함께하는 첫번째, 제대로 농구를 이해하고 기술을 터득하기! 핸즈업 농구클럽은 코트위의 사령탑 가드 포지션이었던 2명의 선생님과 함께 매주 4주간의 정기적인 레슨을 통해 농구의 기본기와 기술을 배웁니다. 핸즈업 농구클럽을 함께하는 두 번째, 핸즈업 멤버들과 함께 게스트야농 즐기기 핸즈업 멤...

70,000원
아티클
우리는 왜 스포츠 전문인(지도자)를 찾기 힘든가?

체육을 전공한 필자에게 가장 많은 질문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는 좋은 체육관 또는 강사 추천이었다. 다른 교과목(영어, 수학 등)과는 달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스포츠 활동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낮은 편으로, 제대로 된 강습을 받는지 조차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개인에게 맞지 않는 강습을 진행하는강사, 스포츠 부상을 입었음에도 개인 부주의로 책임전가하거나 부상 이 후 잘못된 대처방법으로 더 큰 부상을 만드는 강사 등 강사의 전문성 부재로 인해 발생된 문제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었습니다. 반면 강사의 경우 체육관 내 차량운행, 회원관리, 교육지도, 마케팅 등 교육에 집중하지 못한 채 낮은 질의 교육을 진행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환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 그 중 체육시설업 등록 절차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로 발생되는 전문지도자 부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2015 전국등록신고 체육시설업 - 업종별 업소수 분포 현재 대한민국에 신고된 체육시설업은 총 56,660개 소로,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당구장, 체육도장(태권도, 검도, 유도 등), 골프연습장, 체력단련장(헬스장) 순으로 분류됩니다. 체육시설업은 종류에 따라 등록 시설업과 신고 체육시설업으로 구분되며, 체육시설업 신고 후 등록된 시설에 한해 사업자등록 신청 후영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표에서 보는 것과 같이 단순한 공간시설 외에생활체육지도자를 반드시 배치해야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면적에 따라 체육지도자를 배치하지 않거나 체육지도자 자격이 없는 사람을 배치한 체육시설업자에게는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또한, 개인이 수련할 수 있는 운동면적을 확보할 수 있는 시설 기준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면적에 따른 회원을 제한된 회원을 모집해야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보유해야만 체육시설업이 가능한 시스템에...

스포츠인
농구스킬트레이닝의 출발과 성장의 중심이 되기까지

농구 양승성 마스터 기본기를 정확하게 배워야 농구를 취미로 하는 사람도 재밌게 할 수 있고, 정확하게 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전체적인 국민 실력도 올라가고, 동호회 농구 대회를 열어도 보는 재미가 생기는 거죠. 전자랜드 엘리펀츠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농구 스킬트레이너로 자리 잡은 양승성 마스터, 농구 스킬트레이닝이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을 시기에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농구 스킬트레이닝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GPNB가 뜰 정도로 국내 농구 스킬트레이닝 초창기 트랜드를 이끌었던 양승성 마스터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플레이콕 : 안녕하세요, 양승성 마스터님.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양(양승성 GPNB 농구 스킬 트레이너) : 前 전자랜드 엘리펀츠 프로농구선수 은퇴 후 현재는 GPNB에서 스킬트레이너 소속인 양승성이라고 합니다. 플 : 국내에서 농구 스킬트레이닝은 아직까진 생소한 영역인데요, 처음 접했던 계기가 있으신가요? 양 : 고등학교 때 한국 청소년 대표로 중국 아시아 캠프를 갔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NBA 프로그램을 경험해봤어요. NBA 프로그램은 국내 농구와는 달리 선수 개개인의 창의적인 플레이를 유도하고 기본기부터 플레이 방식까지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진행하더라고요. 그때 여기서 배우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은 제가 한국에서 배웠던 것과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그 당시에는 한국에도 NBA 와 같은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도입되면 좋겠다고만 생각했었고, 은퇴 이 후 본격적으로 농구 스킬트레이너의 길을 걷게 되었어요. 플 : 농구스킬트레이닝이 한국에 상륙한 지 4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스킬트레이닝센터 창립 당시 국내에 스킬트레이닝 개념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텐데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양 : 인생의 반을 선수 생활로 보내고 막연하게 달려들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어요. 처음 오픈 당시엔 한 시 수업 하나 뿐이었어요. 그 외에 수업이 없으니 혼자 연습하던 시간이...

스포츠인
느림의 스포츠, 특수체육 지도자의 길을 걷다

특수체육 송민기 마스터 저는 장애에 대한 이해와 스포츠의 전문성 그리고 느림의 미학, 이렇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발달장애 학생이라면 줄넘기 하나가 6개월이 될 수도 1년이 될 수도 있고 그 이상이 될 수 있어요. 대학원 때 특수체육 프로그램에서 장애아동의 사랑스러움을 느낀 것을 계기로 10년 동안 특수체육 강사로 활동중인 송민기 마스터.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체육이라는 매개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려는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는 그의 따뜻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플레이콕 : 안녕하세요, 송민기 마스터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송(특수체육 지도자 송민기) : 저는 2001년 서울대학교 장애아동 체육 교실에서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아동발달 센터, 방과 후 수업 등 10년간 특수체육 지도자로 활동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자전거 문화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일반아동과 발달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자전거 프로그램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플 : 장애 아동을 가르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송 : 대학교 3학년 때 특수체육 실습에서 발달 장애 아동을 처음 만나게 되었어요. 그 체육 프로그램을 5회 정도 실시했는데 갈 때마다 아이들이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장애아동 지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때 특수체육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자원봉사 개념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가 서울대학교 장애아동 체육 교실을 찾게 되었고 특수체육 지도자로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플 : 특수체육 지도자로서 통합프로그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송 : 통합프로그램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보긴 어려워요. 통합프로그램을 시행하기에 앞서 필요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장애인 학생들에게 장애에 대한 이해와 올바른 인식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며, 교사들은 프로그램에 더 신경 쓸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번거롭더라도 비장애인과 장애인 학생의 수준을 고려하여 구성해야 모든 학생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스포츠인
메건라피노(Megan Rapinoe)의 명연설을 통해 본 그녀의 이야기

미국 축구선수 메건 라피노 누가 써준 것도 아닌, 누가 시킨대로도 아닌, 그냥 즉흥적으로 이런 명연설을 할 수 있다는 점. 대한민국의 스포츠 선수들에게서는 꿈도 못꾸죠. 스포츠 선수만 그럴까요? 정치인들에게서도 보기 힘들죠. 이런 선수가 대한민국에서도 나오려면 운동만 하게 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운동 선수랍시고 체대에만 몰아 넣어서도 안되는 겁니다! 자기네들 밥그릇밖에 관심 없으면서 권위만 내세우며 대한민국의 스포츠가 어쩌고 떠들어도 안되는 겁니다. 미국인들 상당수를 감동시킨 그녀의 명연설은 이러합니다. --------------------------------------------------------------- 1.We got tea-sippin This group is so resilient, is so tough, has such a sense of humor. 이팀은 굴하지 않습니다. 매우 터프하죠. 유머감각도 있구요. Its just so badass. 그냥 매우 공격적이죠. Theres nothing that can faze this group. 이 팀을 애먹일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Were chilling. 우리는 냉정하죠. We got tea-sippin, 우리는 차도 마실 줄 알죠. We got celebrations. 우리는 기념합니다. We have pink hair and purple hair, 우리는 핑크색, 퍼플색 머리를 지녔습니다. We have tattoos and dreadlocks. 우리는 문신과 레개 스타일도 지녔죠. We got white girls and black girls and everything in between. 우리는 백인도 흑인도 있으며 그 흑백 사이의 모든걸 지니고 있죠. Straight girls and gay girls. 게이도 있고 게이가 아닌 이도 있죠. I couldnt be more proud to be a co-captain with Carli and Alex of this t...

스포츠
복싱의 역사

boxing 1.복싱경기의 기원 두 사람이 벌이는 주먹싸움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복싱의 역사는 인류 최초 의 사회 형태인 수렵채집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이때부터 사냥과 전투는 생존을 위한 일상적 활동이었는데,식량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맹수와 부딪쳐야고,외적으로부터 자신과 부족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주먹싸움은 공격수단이자 자기 방어의 수단이었다.표준화되고 규격화되진 않았을 지라도 주먹싸움이 인류의 가장 원초적 형태의 생존전략인 것은 분명하다. 수렵채집적인 삶의 양식은 최초의 인류가 등장한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면 서 인류의 유전적인 요소로 자리 잡는다.이 시기에 하루하루 반복된 격투,추격,포획 등의 활동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원초적 습성이 되었다(Cashmore, 2000).그리 고 오늘날 문명화란 진보를 통해 너무도 안전하고,예의바르고,일상적인 인간의 삶 속에서,야생의 습성들은 복싱,달리기,레슬링,창던지기 등 다양한 스포츠의 형태로 야생의 삶을 재현하고 있다.즉,근대 스포츠는 원시인류의 습성에 그 뿌리 를 두고 있는 것이다. 복싱에 관한 인류 최초의 흔적은 고대 이집트,메소포타미아,그리스 등 지중해 문명 곳곳에 남아있다.그 당시 어떤 형식을 띄었던 간에 복싱이 널리 행해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적들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바그다드의 동쪽 하파자(Khafajah)에 위치한 닌투 성전에서 발견된 테라코타 부조는 복싱과 레 슬링의 모습을 담고 있다(기원전3000~2340).고대도시 에수눈나의 유적에서는 두선수가 한 팔을 구부려 클린치를 하고 다른 한 팔은 복부를 방어하고 있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나타나있다(기원전3000~2000). 이집트 복싱의 흔적은 고대도시 테베에서 찾을 수 있다.케루에프의 무덤에 새 겨진 테라코타 부조에는 세 쌍이 복서가 파피루스 줄기로 막대싸움을 벌이는 장면 이 새겨져 있다.복싱이나 레슬링,막대싸움 등은 당시의 페스티벌에서 널리 행해 졌고 특히 파로오를 찬양하기 위한 공연으로 알려...

아티클
미국의 임원들은 운동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

미국에서상위권대학을진학하고자하는고등학생은단순히학업성적만점자(우리나라수능과같은)를 선호하는 것이 아닌,학업성적(GPA, SAT,ACT)뿐만 아니라방과후활동(스포츠또는예술,학생회나토론또는과학관련부활동),그리고자원봉사활동까지학창시절의전반전인활동을종합평가하여입학을하는것이일반적입니다. 또한 팀워크를 중시하는 미국의 경우 팀스포츠 종목이 대학 입학이나 기업 입사 등 가산점을 받는데에 큰역할을 차지합니다. 미국의 경우 팀스포츠에서 팀워크는 창의력을 발산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이는 다양한 기업에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중요한 척도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사진 : NCAA 또한, 미국에선스포츠장학생 제도를통해취약계층학생들이상위권대학진학의 기회도얻을수있는데,국내와는달리스포츠장학생역시학업성적,스포츠입상성적,자원봉사등종합평가를통해장학생을선발하고 있습니다. 스포츠장학생제도를통해성공한대표적인사례로는스타벅스의전CEO하워드슐츠가있습니다. 뉴욕브루클린빈민가출신이었던그는건물반지하단칸방에서살면서생활하였는데,학업 성적이 나쁘지 않았음에도 가정형편으로 대학 진학을 힘들어했습니다.다행히운동에소질이 있던 그는야구,농구,미식축구등다양한종목에서본인의기량을뽐내며 실력을 인정받은 후,미식축구 종목으로장학금을받고노던미시간대학에입학하게되었습니다. 사진 : NCAA 이처럼미국에서스포츠는교육의중요한부분으로,학생들이스스로학업하고경험할수있는기회를제공합니다. 단순히높은점수를받는것이교육이아닌것을알기때문에선진국일수록학업성적뿐만아니라방과후부활동,자원봉사등이모든것을교육의과정이라고여기고적극장려하고있는 것입니다. 프로선수 출신 CEO 호르헤 파울로 레만(Jorge Paulo Lemann) 3G Capital 공동창업주 테니스(프로선수, 윔블던 출전)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 경제학 새뮤얼 팔미사노(Samuel J. Palmisano) IBM 전 CEO (2002~2011) 미식축구(NFL Try Out) Johns Hopkins Universit...

스포츠
휠체어농구의 역사와 규칙

휠체어농구의 역사 장애인 스포츠의 꽃이라 불리는 휠체어농구는 Ludwig Guttmann경이 1944년 영국 에일즈베리市 스토크맨드빌 병원에서 2차 대전 부상자들을 대상으로 처음 시작되었으며, 1946년 미국에서 미국휠체어농구협회(NWBA: National Wheelchair Basketball Association)가 결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장애인의 올림픽 경기인 패럴림픽(Paralympic)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1964년 동경 패럴림픽 대회였다.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에서 97개국이 휠체어 농구를 하고 있으며,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싱가폴 등 2000년도 들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이다. 국내에서는 1984년 삼육재활원 휠체어농구팀이 처음 창단되면서 시작되었다. 1985년에는 재가(在家) 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정립회관 휠체어농구팀이 창단되었고, 그 해 국내 최초의 휠체어농구 경기가 정립회관에서 개최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경기는 1985년 제5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였다. 휠체어농구 규칙 2,3,4 쿼터에서는 점프볼 없음 1쿼터만 센터써클에서 토스로 경기 개시한다. (얼터네이팅 방식) 볼을 가진채 3회 이상 휠체어를 밀고 가면 트레블링 반칙 드리블은 수차례 해도 상관 없음 득점 (슛 성공) 프리드로우에 의한 슛 성공 ▶ 1점 3점 라인 안쪽에서 던진 슛 성공 ▶ 2점 3점 라인 바깥쪽에서 던진 슛 성공 ▶ 3점 주요반칙 사이드라인, 앤드라인 가까운 경계선 밖에서 드로인 파울시 슛 성공 : Free throw(자유투)를 한 차례 준다. 파울시 슛 실패 : 자유투를 준다.(두 차례, 세 차례) 팀 파울 (Team Foul) 한팀의 반칙이 매 쿼터 각각 4회를 넘은 후의 반칙에는 2번의 자유투를 준다. 백 패스 (Back pass) 프론트 코트에 옮겨진 볼을 백 코트의 자기편에게 던지는 것은 안된다. 공격자는 제한구역 안에 3초 이상 머무를 수 없다. ...

스포츠
농구의 역사

basketball 농구의 역사 [농구의 역사] 1891년 매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의 YMCA 체육학교에서 근무하던 캐나다인 제임스 네이스미스(James Naismith/1861~1939)가 YMCA 체육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칠만한 실내운동을 고안하던중 지상에서 10 피트 정도 떨어진 과일바구니에 공을 넣으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착안, 겨울스포츠의 필요성과 속도감, 그리고 실내라는 한계성을 고려해서 13개의 기본 조항을 제정한 후 처음으로 농구 경기를 창안하였다. 미식축구나 축구와 달리 몸싸움이 없는 안전한 스포츠를 만들고 싶어서 고안하게 되었다. 네이스미스 박사가 처음 농구를 고안할 때만 해도 선수들 간의 과도한 신체접촉을 배제하는 스포츠를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농구가 생긴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과격한 몸싸움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되었고, 이런 몸싸움을 방지하고자 아예 신체접촉을 차단하는 실내스포츠인 배구를 새롭게 만든다. 최초의 농구 경기는 1892년 1월 20일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스프링필드 대학교에서 처음 열렸다. 처음에는 당연히 여러 시행착오도 많았는데, 1894년에 처음으로 농구공이 개발되었다. 농구공을 개발한 곳이 미국 스팔딩사였는데 여기서 림도 만들었다. 하지만 1890년대 림은 꽤 불편했다. 림에 손잡이가 달려서 당겨야지 밑이 열리며 공이 떨어지는 구조였다. 경기 도중 골이 들어가면 심판이 경기를 멈추고 이걸 당겨서 림에서 공을 빼내 경기를 이어하는 방식이었는데, 이걸 본 네이스미스는 이건 그냥 바구니에 공을 넣고 빼내는 거랑 다른 게 뭐냐? 라고 했고, 결국 이 림은 오래가지 않아 파기되고, 밑에 구멍이 뚫린 지금의 림이 만들어지게 된다. 처음에는 출전 선수 제한이 없어서 양 팀에서 무려 20여 명이 다 나와 한 경기에 50여명 선수가 몰려들어 경기가 이뤄지기도 했기 때문에 아예 팀별로 코트를 양분해서 가드는 자기 코트에서 수비만 하고, 포워드는 상대팀의 코트에서 공격만 했으며 중앙에 있다가 양쪽 모두를 오갈 수 있는 ...

스포츠
3X3농구의 역사 및 경기룰

3X3 농구의 역사 3X3 농구에 대한 FIBA의 집중적 인 초점의 시작은 2007 년에 시작되었으며, FIBA는 싱가포르의 2010 유스 올림픽 게임 (YOG)에서 다른 형태의 스포츠를 실험하기로 결정했다. 2007 년 2 월 FIBA 청소년 농구위원회와 국제 경쟁위원회 (International Competitions Commission)에서 조사한 3x3 농구는 FIBA 중앙위원회에 2010년 YOG의 플레이 형식으로 추천되었으며 2007 년 12 월에 승인되었다. 젊고 도시 적이며 긍정적 인 이미지를 가진 스포츠뿐만 아니라 보편성과 제한된 인프라 및 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따라서 3x3 농구는 전 세계 농구 스포츠 발전을위한 잠재적 촉매제로 확인되었다. 싱가포르에 이어 FIBA는 3x3 농구에 통일되고 적용된 규칙을 배치하는 데 집중적으로 노력했으며 국제 3x3 토너먼트의 가능성을 조사했다. 3x3은 2010년 YOG에서 국제 무대에 처음 등장했으며 마을에서 가장 인기있는 티켓으로 등록되었다. 2010년 9월 이스탄불에서 열린 FIBA 월드 콩그레스는 3x3 농구의 추가 개발에 대한 훈련과 FIBA의 야망에 대한 심도있는 프레젠테이션을 받았으며, 여기에는 올림픽 훈련이되었다. 특별히 구성된 3x3 실무 그룹의 일련의 목표와 권장 사항을 결합하여 3x3 농구의 추가 개발을위한 로드맵을 구성했다. 여기에는 전 세계 경쟁 네트워크와 온라인 플레이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기술 중심 전략뿐만 아니라 개선 된 규칙 세트가 포함되었다. 참가와 공연은 개별 순위로 이어지며, 플레이어는 한 토너먼트에서 다른 토너먼트로 팀간에 자유롭게 전환 할 수 있다. 이 로드맵은 2011 년 3 월 13 일 리옹에서 열린 회의에서 FIBA 중앙위원회의 승인을 받았으며, 2011 년 여름에 개최 된 테스트 단계가 진행되었으며 FIBA는 많은 3x3 토너먼트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2011 년 9 월에 또 다른 중요한 이정표에 도달했으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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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농구

basketball 초기여자농구 여자 농구는 1892년 가을 Smith College에서 시작되었다. 스미스의 젊은 물리 문화 감독으로 최근에 고용된 센다 베렌슨 (Senda Berenson)은 활동이 신체 건강을 개선하기를 희망하면서 학생들에게 농구를 가르쳤다. 남자 농구의 경우 야구는 야구나 축구와 같은 기존 팀 스포츠에 실내용으로 설계되었지만 농구는 최초의 여자 팀 스포츠가 되었으며, 곧 하키, 조정, 배구가 뒤따랐다. Basketball의 초기 지지자들은 미국 전역의 YMCA 및 대학과 제휴했으며 게임은 전국에 빠르게 퍼졌다. 그러나 Berenson은 단순히 여성에게 게임을 가르치는 데 위험을 감수하고 있었다. 19세기 빅토리아 문화는 여성의 연약함을 강조하고 가정에서 여성의 지위를 우선시했으며, 베렌슨은 경기가 너무 힘들면 신경 피로로 고통받는 여성들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여성이 빅토리아주의 세련미와 온화함의 이상에서 모두 놀 수 있도록하기 위해 그녀는 수정된 규칙을 가르쳤다. 그녀는 팀당 9 명으로 참여를 늘리고 법원은 세 영역으로 나뉘었다. 각 지역 (가드, 센터, 포워드)에 3 명의 선수가 배정되었고 라인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공은 패스 또는 드리블에 의해 섹션에서 섹션으로 이동했으며, 플레이어는 3개의 드리블로 제한되었고 3초 동안만 볼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른 선수로부터 공을 빼앗거나 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각 점수 후에 센터 점프가 필요했다. 교육받은 중산층 여성이 대학 간 스포츠 경기를하는 남성 게임의 유행을 따르고있는 YMCA 및 여성 대학을 통해 Berenson의 규칙의 변형이 전국에 퍼져 있었다. 초기 농구는 남자 경기와 마찬가지로 복숭아 바구니와 축구 공으로 뛰었지만 여자 유니폼은 다시 빅토리아 시대 문화를 반영하고 실용적이지만 여성 운동 선수의 품위와 여성 성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었다. 19세기 중반 이래로 상류층 여성들이 컨트리 클럽에서 운동을 했지만, 전장 치마와 코르셋에서 테니스와 크로켓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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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의 경기방법과 규칙

basketball 농구 규칙 각 단체별로 세부 규칙이 다르지만 대부분의 단체는 FIBA의 국제 룰을 기반으로 약간의 로컬룰이 첨가된 방식으로 운영한다. 다만, NBA와 FIBA는 전체적으로 규칙들이 많이 다른 편이다. 대표적으로 수비자 3초룰이나 루즈볼 파울은 NBA에는 있지만 FIBA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기시간 아마추어, 미국 NCAA, FIBA 국제 경기, 한국 프로농구나 대부분 리그는 총 40분, 미국 NBA, 중국 CBA, 필리핀 PBA는 48분이다. KBL을 비롯한 일반 농구 규칙상으로는 경기 시간은 4개 쿼터(Quarter)로 10분씩 갈라지며, 1-2쿼터 사이와 3-4쿼터 사이는 2분, 2-3쿼터 사이(하프타임)에는 15분 쉰다. 중등부는 쿼터당 8분, 초등부는 전후반 각 15분으로 플레이한다. NBA에서는 쉬는 시간은 같지만 쿼터당 시간이 2분씩 더 길다. 4쿼터와 연장 쿼터에서는 종료 2분전부터는 선수가 코트 안에서 공을 가지고 있는 실경기 시간만 잰다. 원래는 전반, 후반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광고시간을 좀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이렇게 바꾸었다. 미국 프로축구 리그인 메이저리그 사커도 출범 당시에는 쿼터제였다가 FIFA의 제재로 도로 돌아간 적이 있다. 연장전은 정해진 시간 동안 연장전을 실시하고 (공격 방향은 바꾸지 않는다) 그 시간 내에 많은 득점을 하면 승리. 무승부 시엔 또 연장전을 한다. 득점이 자주 나오는 종목이다 보니 미식축구나 아이스하키에서 행하는 골든 골은 할 수 없다. 끝장승부 득점 방식 득점을 올리는 방법은 상대편 골대(림)에다 공을 넣는 것. 3점 라인이라는 선 밖에서 던져 넣으면 3점, 그 이외는 2점이며, 자유투로 인한 득점은 1점이다. 특별히 파울 후에 얻는 자유투를 던져 넣으면 1점을 얻는다. 한 선수가 한 플레이로 득점 가능한 최고 점수는 4점이다. (테크니컬 파울 및 비슷한 상황에서도 그건 변함 없다.) 테크니컬 파울로 인한 자유투 2개+3점슛 하나 성공으로 한번의 공격권으로 5점을 성공시킬 수도...

스포츠
농구의 포지션

basketball 포지션 구분 일반론 농구에서 코트에 동시에 서는 5명은 선수들의 장점과 작전 수행능력에 따라 포지션을 구분한다. 크게 농구의 포지션 구분은 가드, 포워드, 센터로 구분한다. 이후 가드중에서도 포인트 가드(PG), 슈팅 가드(SG), 포워드 중에서 스몰 포워드(SF), 파워 포워드(PF)로 세분화가 되어 가장 이상적이고 일반적인 형태의 포지션 구성으로 정립되있다. 포지션을 숫자로 나타내는 경우에는 PG를 1번, SG를 2번, SF를 3번, PF를 4번, C를 5번으로 부른다. 포지션 수행의 현실 선수에 따라 한 포지션밖에 못 보는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전술에 따라 두 가지 이상의 포지션을 소화해 내거나 뛰는 포지션과 하는 플레이 성향이 다른 선수들도 있다. 골밑 플레이를 하면서 사이즈와 운동능력까지 겸비한 경우 센터와 파워 포워드를 둘 다 소화해 내는 식이나, 포인트 가드와 슈팅 가드를 다 소화 가능하다거나 한 식이 그런 예다. 보통 한포지션의 역할에 충실한 포지션을 퓨어, 두가지 포지션의 역할을 해내는 것을 듀얼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포인트 가드의 경우 공격력에 치중되어 있다면 듀얼 가드, 볼배급, 경기조율등에 집중한 포인트 가드는 퓨어 포인트 가드(클래식 포인트 가드)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데 포지션 별로 리그 상황에 따라 어느정도 높이가 되어야 수비가 되는지라 포지션과 키가 맞지 않는 경우 이를 극복해내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으로 이른바 트위너(tweener)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포지션 세분 가드 가드라는 이름의 유래는 농구가 아직 룰이 정립되지 않았을때 코트를 반으로 나누어서 자기 편의 코트에서만 머무르며 골대를 지키는 포지션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학교체육으로 고안된 농구에서 공격에 유리한 키 큰 학생들은 포워드가 되어서 공격하러 상대편 코트에 갔고 키 작은 학생들이 자기 코트를 지켰기 때문에 이후로도 역할은 변했으나 상대적으로 키 작은 선수들이 가드라는 명칭을 이어받게 되었다. 중앙에서...

라이프
마라톤의 사계(四季) - 가을

마라톤의 사계로 글을 쓰던 중 겨울, 봄, 여름은 그러대로 잘 썼지만 마지막 글인 가을편은 정말 마무리하기가 힘들었다. 사계절을 쓰는 중에 마지막이라 그런지, 절실하게 할 이야기가 있는 건지, 아니면 없었던 욕심이 일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절실하다는 건 사실 안타깝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낙엽이 지는 시간일 수도 있고, 벚꽃이 땅에 떨어지는 시간이거나, 아니면 가을이란 계절이 길게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단풍을 오래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달리고, 더 잘 쓰려는 나의 욕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참 많이 달렸어.라는 말은 가슴이 뭉텅 빠지는 느낌이다. 무엇엔가 들인 시간은 어떻게든 모두 돌려받는다는 말처럼 달리기에 쏟았던 시간에 맞는 선물을 천천히 하나씩 돌려받았다. 소질 없는 평범한 일반적인 러너의 성장기를 쓰고 싶었다. 어떻게 초보 러너가 매 번 달리면 빠른 기록이 되고, 달리는 거리는 얼마나 멀리 늘어나는지, 무슨 이유로 시간과 공간을 넘어 꾸준히 성장하는 러너로 지내왔는지 생각하면 놀랍다. 내가 이룬 것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는 생각에 자주 멈칫했다. 수많은 러너는 주로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달리는 일이 아름답다면 무엇 때문에 아름답다고 생각한 건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달리기를 겨울에 시작했으니 겨울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 달리기의 겨울, 봄, 여름 그리고 가을로 이어지는 사계절의 여정이 순조롭게 끝나길 바란다. 러너들은 길 위에서 사계를 모두 보고 느끼고 몸에 새기는 사람이다.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점에서 시작했고, 그와 함께 주로(走路)에서 달릴 때가 인생에서 가장 많이 웃고, 즐겁고, 행복했다는 사실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마라톤의 사계(四季) [마라톤의 사계(四季) - 겨울](https://fishpoint.tistory.com/3179) [마라톤의 사계(四季) - 봄](https://fishpoint.tistory.com/3190) [마라톤의 사계(四季) ...

라이프
운동장에 있던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열여섯의 늦은 가을, 나는 한참 드라마 태릉선수촌에 빠져있었다. 드라마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사랑과 꿈에 대한 내용이었다. 유도하는 남자 주인공의 넓은 가슴팍에 중학생 소녀의 가슴은 쉴 틈 없이 벌렁거렸다. 금메달과 사랑을 동시에 쟁취하려는 주인공들의 풋풋한 모습은 청춘 그 자체였다. 그래, 어른이 되면 나도 저렇게 되겠지! 드라마를 보며 어렴풋이 나의 20대를 상상했다. 그쯤 우연히 알게 됐다. 같은 반 친구 예슬이도 태릉선수촌에 푹 빠져 있다는 사실을. 드라마는 금요일 밤에만 하는 8부작 단막극이었기 때문에 인기가 없었다. 이 재밌는 드라마를 나 혼자만 본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던 참이었다. 헐 너도 그 드라마를 안다고? 우리는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인사만 하고 지나치는 사이였지만, 같은 드라마를 본다는 이유만으로 금방 친해졌다. 그다음 우리는 만화 슬램덩크로 넘어갔다. 강백호의 투지에, 정대만의 여유로움에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이 흘리는 땀이 부러웠다. 높은 여름 기온에 비실비실 흐르는 내 땀방울과는 차원이 다른, 농도 짙은 땀이었다. 우리는 그해 겨울 내내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너에게 가고 있어~ 슬램덩크 OST를 흥얼거렸다. 그다음 단계는 축구장. 우리는 자연스럽게 축구를 보러 몇 번 축구장을 갔고, 우연히 TV를 돌리다 중계 중인 배구 경기를 보고 배구 경기장까지 찾아갔다. 그렇게 우리의 열여섯은 스포츠를 구경하는 관람객으로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사가 스포츠에 한정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학교 교복 치마는 빨간색 잔 체크무늬였는데, 무당벌레를 떠오르게 하는 검은색과 빨간색의조합이 촌스러웠다. 고등학생이 되면 드디어 예쁜 교복을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야, 교복 예쁘게 입으려면 한 5킬로는 빼야 할 것 같지? 본격적으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한참 이소라 다이어트 비디오가 유행하고 있었다. 우리는 네모난 모니터 화면 속에서 수영복만 입은 채 열심히 팔 운동하는 이소라 언니를 분주히 따라 했다. 엄마가 ...

라이프
농구장에서 보이는 것들, 깨달음은 언제나 어느 곳에서도 온다.

고등학교 입학식 때의 일이다.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시길. 태양을 향해 화살을 쏘아라. 그러면 태양까지는 도달 못하더라도 그 가까이에는 갈 것이다. 그때는 그리스 로마 신화 얘기 중 하나인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개똥철학인가 하며 두리번거리는 얼굴들도 많았다. 물론 그 화살이 귓등에도 스치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은 팩트다. 지금 그 얘기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의 속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목표 설정과 노력에 대한 의미 부여는 공감할 수 있겠다. 아마도 교장선생님 말씀의 속뜻은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너네 인생은 죽 쑤리라 그런 의미였을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과 농구를 하면 원래 하늘 색깔이 노랗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팔과 어깨가 아프다가 나중에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농구코트가 축구장보다 더 크게 보일 때도 있다. 농구 활성화는 요즘 아이들의 큰 키와도 인과관계가 있다. 성장판을 자극하는 운동이다 보니. 서글픈 것은 아빠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관절만 자극하고 키는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스가 필요한 시간. 농구를 하다 보면, 아니 농구 경기를 보다 보면, 현란한 드리블에 박수를 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상대 수비를 따돌리는 드리블도 좋지만 역시나 바스켓에 골을 넣은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멋진 드리블과 패스가 골로 이어질 때 게임으로서 농구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게임은 과정도 중요하지만 이기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정설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위해 꿈을 꾸고 구체적인 계획을 짜고 그 실행을 위해 적잖은 시간을 투자한다. 이러한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목표인 표적을 정확히 정조준하거나, 타깃을 간접적으로나마 조준할 수 있는 핵심 부분을 터치할 필요가 있다. 농구가 딱 그랬다(물론 다른 운동도 그러하겠지만). 농구의 다양한 슛을 연습해서 자유자재로 슛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골이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라이프
Her Story - 국가대표 투포환 선수 박봉식과 중고등학교 친구들

중학교에 올라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송구부 주장이었던 정광모는 졸업 후에 한국일보에 들어가 기자가 되었고 여기자의 표상이 되었다. 육상 선수로 당시 최고 기록을 남긴 장석호는 세브란스로 진학하여 의사가 되었다. 4명의 릴레이 선수 중 나는 첫째로 달렸고 장석호는 항상 마지막 주자로 뛰었다. 앞에서 실수를 하거나 잘 못 뛰어도 석호는 언제나 다른 팀을 따돌리고 여유 있게 도착했다. 후에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친구 심치선은 연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명예교수로 은퇴했다. 운동을 함께한 친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박봉식은 최초의 여성 국가대표 선수였다. 주 종목은 투포환, 투원반이었는데 농구, 자전거, 육상, 스케이트 등 모든 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처음에 농구부에 들어왔고 육상부를 거쳐 주 종목으로 삼은 투포환을 했다. 우리도 곁에서 그 모습을 보며 투포환을 저런 식으로 던진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중국에서 유학을 왔는데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체육 교육을 그곳에서 받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광복 후, 조용하고 듬직했던 이 친구는 1948년 KOREA 마크를 달고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이 참가한 첫 올림픽인 제14회 런던 올림픽에 투포환 선수로 참가하여 18위를 차지했다. 올림픽에 참가한 단 한 명의 우리나라 첫 여자 선수였다. 실제 국내에서 남긴 기록은 세계 기록감인데 20박 21일간 9개국 12개 도시를 거쳐서 런던에 도착했으므로 쌓인 여독과 우여곡절의 사연들, 낯선 환경과 국제 무대에 대한 두려움으로 제 기량을 다 드러내지 못한 것 같아 무척 안타까웠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의 일원으로 이상훈 코치와 투포환의 봉식이가 런던으로 떠나기 전에 환송회를 열었고 커다란 꽃다발을 주었다. 멋진 친구를 두게 되어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봉식이는 졸업 후에 뇌수막염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기대했던 것만큼 성장한 후에 많은 활약을 보지 못해 못내 아쉽다. 1948년 KOREA마크를 달고 첫 출전하는 런던 올림픽, 선수 환송회...

라이프
Her Story - 저기 이화 6번 간다!

창신 소학교 시절, 집에서 학교까지 저학년 아이가 걷기에는 거리가 좀 멀었다. 학교를 오고 가는 길에 동덕여자 중고등학교의 무척 높은 학교 담장을 따라가야 했다. 담장 옆 거리 한편의 큰 우물 근처에 서면 그 학교 높은 담 위로 불그스레한 큰 공이 휙휙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하얀 판때기 앞에 굵은 그물로 엮은 주머니가 달려 있는데 주머니 아래는 뚫려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커다란 공이 하늘로 휙 날아와서는 그 망태기 속으로 쏙 들어가는 게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푸른 하늘을 가르고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커다란 밤색 공이 망태기 속으로 쏙 들어갈 때면 왠지 모르게 활명수 가스가 속에서 터져 나오듯 시원했다. 누가 어떻게 던지는 건지는 보이지 않고 커다란 공만 허공을 가르며 이리로 가고 저리로 가다가 망 속으로 쏙 쏙 빨려 들어갔다. 호기심도 자극했고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서 매일 쳐다보았다. 저게 무슨 운동일까? 몹시 궁금했지만 학교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언니가 되면 저런 큰 공놀이를 하는구나, 나도 나중에 저걸 꼭 해 봐야지! 해 봐야겠다! 하는 마음이 허공을 가르는 공을 볼 때마다 쌓여 갔다. 그때는 그 큰 공놀이가 농구라고 불리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전학 간 첫날, 이화여자중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니 바로 그 망태기 골대가 한두 대도 아니고 줄지어 서있어서 깜짝 놀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화에는 농구부와 농구 골대가 이미 몇 대 있었는데, 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즈음 어느 학부형이 학교 농구부 격려 차원에서 농구 골대를 12대나 기증한 것이었다. 이화여자중학교에 오니 학교와 선생님들이 펼쳐 보여주는 것이 많아 신문물을 끊임없이 대하는 것 같았다. 맘껏 배울 수 있는 드넓은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음을 직감했다. 나는 특활반을 지원하는데 망설일 것도 없이 농구부에 바로 신청했다. 비록 노천이었지만 여학교에 농구 골대가 십몇 대나 있어서 이화농구팀이 충분히 연습하고도 남았다. 심지어 연희전문학교 상대 출신인 우리 중학교 이상훈...

라이프
농알못, 여자농구동아리를 처음 접하다

10년을 넘게 운동을 했지만, 순수하게 동호회 활동을 해본적이 없었다. 해외에 여행갈때면 야외코트에서 농구를 즐기는 이들이 늘 부러웠지만 농구 경험이 나에겐 그림의 떡이었고, 함께 어울려 운동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언젠간 농구를 꼭 배워서 같이 어울려야지 라는 버킷리스트를 갖고 있었다. 어린 시절 기본기를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성인이 된 나는 처음 시작을 한다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고, 농구를 전혀 하지 못하는 나에게 동호회 가입 그 자체가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특히 팀스포츠는 내가 아닌 팀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하는 종목이기에, 잘 못하는 내가 들어갔을 때에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학창시절 농구와 피구, 배구를 했지만 운동을 싫어하는 친구들과 함께하니 잘하는 1-2명의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점수내기 위한 플레이였고, 체육선생님은 두 개로 나뉜 팀에게 전술이나 팀워크가 아닌 그냥 이기는 팀에게 수행평가 점수를 높게 주는 수준에만 운동을 했으니 제대로 된 운동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농구를 선망의 종목으로 보던 중, 플레이콕 핸즈업농구클럽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매일 출근하며 서당개마냥 조금씩 기본기를 배울 수 있었고 농구를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어느정도 기본기를 터득하고 자신감이 조금 생긴 나는 핸즈업 멤버 중 한명이 소속된 동호회에 게스트를 신청하고 처음으로 정식 농구게임을 할 수 있었다. 낯선 사람들, 아직은 나에게 어려운 종목인 농구. 모든 것들이 두렵고 무서웠다. 하지만 나의 걱정과는 달리 함께 하는 멤버들이 룰과 방법, 위치 등 친절한 가이드 덕분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고, 팀스포츠가 이렇게 즐겁다는 사실을 진짜 처음으로 느껴본 순간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팀플레이가 가능한 단체스포츠를 경험한 이들을 선호한다고 한다. 각자의 역할과 개성이 분명하면서 팀의 승리를 위해 기여하는 팀워크. 우리 팀이 잘하기 위해선 내가 위치한 포지션에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희생이 아닌 전력을 다해 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