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안될 땐 되는 거 하자, 롱런을 위한 달리기

슬기

못한다는 말을 많이 들으면 주눅이 든다.
할 수 있다는 마음도 점점 작아져서 그냥 숨어버리고 싶을 때 위로가 되는 것도 말이다.

"달리기 많이 해보셨어요? 너무 잘 달리시는데요."

3km 지점을 뛰고 있을 때쯤 앞에서 뛰던 페이서가 말을 걸어왔다. 매우 신나고 흥분된 어조였다. 그 날은 내가 처음으로 저녁에 크로스핏을 가지 않고 러닝 크루에 나온 날이었다. 

"제가 크로스핏을 해서 그런가 봐요. 너무 좋네요. 다 같이 파이팅하는 분위기가."

평지를 달리다 업힐이 나올 때면 응원 구호가 쏟아져 나왔다. 뛰는 그룹 맨 앞에서 km당 속도를 맞추던 페이서가 선창을 했고 뒷사람들은 메아리처럼 그 구호를 반복했다. 여러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파이팅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이상하게 없던 힘도 솟구쳤다. 좀 전까지만 해도 가쁜 숨을 내쉬었는데 어느새 업힐 꼭대기 지점까지 올라와있는 나를 보며 말이 가진 힘이란 게 참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 크로스핏 하시는구나." 페이서는 떨떠름해했다

이내 어색한 표정을 감추고 다시 환하게 웃어 보였다. "달리기 자주 나오세요. 잘 뛰시는데요?"
나는 그런 그녀 앞에서 환한 얼굴로 네,라고 대답했다. 그 후로 정말 자주 나갔다. 러닝 크루 정기 런이 월, 목 주 2회였고 6개월 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했으니 못해도 40번은 넘게 나갔을 것 같다. 스마트폰 캘린더에는 항상 월, 목에 고정적으로 러닝 일정이 기록돼있었고 자연히 뛰러 나온 사람들과 안면도 트게 되고 친해지게 됐다. 한번 뛸 때 최소 6km에서 최대 10km까지 뛰었다. 매주 꾸준히 달리다 보니 달이 바뀌면서 뛰는 속도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km 당 6'30"에서 6'00" 5'45" 5'40" 5'30"... 차츰차츰 올라가기 시작한 달리기 능력을 바탕으로 마라톤도 뛰게 됐다.  

대회는 주로 주말에 있던 터라 출전이 용이했다. 한번 나가니 재미를 붙이게 됐다고 10km 대회 4번, 하프 대회 2번 어쩌다 보니 반년 사이 메달이 6개나 생겨버렸다. 나는 도통 달리기에 취미가 없던 아이였는데 말이다. 연말에 한 해를 돌아보며 캘린더를 다시 봤다. 어느샌가 월, 목 외에도 혼자 달리는 횟수가 많아져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그 해에는 여름휴가를 가서도 달리기를 했다.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어느 순간부터 이미 달리기가 좋아져 버린 것이었다.

그즈음 나는 크로스핏에서도 달리기 잘하는 애로 간주되었는데 일단 박스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대신 달리기 맨~ 이라 이름 불렀다. 혹여나 크로스핏 WOD(오늘의 운동)로 Run이 나올 때면 오늘 네 운동 나왔어라고 말할 만큼 나를 보는 이미지가 달리기로 굳어졌다. 뛰는데 들인 시간만큼이나 Run WOD 기록도 나쁘지 않았고 이후에 나는 달리는 크린이(@cross__runner)라는 웹툰을 연재하기까지에 이르게 됐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크로스핏 어린이라는 뜻이 담긴 이 웹툰에 대해서는 시작과 방향성에 대해 다음에 더 자세히 말해보고 싶다.   

"하나도 못해? 정말로? 다시 해봐."

언니는 얼굴을 한껏 찌푸린 채 내 앞에 독불장군처럼 서있었다. 그 모습이 무섭고 싫었지만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그저 바닥에 떨어진 줄넘기를 다시 잡을 뿐.  타닥. 툭. 타닥. 툭. 타닥. 툭. 

크로스핏에서 더블 언더(double-under)라고 부르는 줄넘기 2단 뛰기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취약 종목이었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끝내 한 번도 줄을 넘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언니를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금방이라도 욕을 할 것 같던 언니 입에서는 깊은 한숨이 빠져나왔고 내게서 등 돌린 채 다른 남자 회원에게 말을 걸었다. 해보세요. 그 남자 회원은 한 번에 2단 뛰기를 10개나 하고서야 바닥에 발을 붙였다. 

"애는 잘하잖아. 너도 해봐 다시. 다시. 다시."

좋아하는 노래라면 몇 백번도 다시 듣고 좋아하는 책이라면 선물하고 다시 사고 선물하고 다시 사길 반복하는 내가 다시, 라는 말을 그렇게 싫어할 줄 몰랐다. 정말로 나는 이걸 할 수가 없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더는 하고 싶지 않은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또 해내야 했다. 

내가 못하면 이 분들이 배로 해야 하니까. 내가 할 때까지 내 앞에 서 있는 언니의 구겨진 표정은 펴지지 않을 테니까. 코치님이 짜 준 그룹(세명으로 구성된 팀) 당 미션은 돌아가면서 300개의 더블 언더를 채우라는 것이었다. 속으로 되뇌었다. 적어도 하나는 넘겨야 한다. 제발 하나만 넘겨다오. 그러나 결국 하나도 넘기지 못했다. 

다음 날, 퇴근하고 크로스핏 박스에 들어가자마자 주변을 살폈다. 언니가 왔는지 안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고 눈이 마주쳤다. 허탈한 마음과는 달리 환하게 인사했다. 설마 오늘도 같은 팀이겠어. 생각하며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는데 운명의 장난처럼 다시 또 그 언니와 한 팀이 됐다. 

오늘의 웜업 운동은 키핑 풀업(kipping pull-up)이었는데 키핑 풀업은 두 손으로 철봉을 잡은 채 배를 폴더처럼 접었다가 피며 그때 힙의 반동으로 턱을 철봉 위로 끌어올리는 동작이다. 어제의 더블 언더만큼이나 못하는 것이었다. 

크로스핏 시작한 지 3개월 차, 매일매일 왔으니까 못해도 약 100일은 한 건데 여전히 못하는 것들만  천지였다. 못하는 것그중에서도 더 못하는 것들이 산재하는  정글 같은 곳에서 나보다 센 포식자들은 늘 무섭고 두렵기  마련이었다쪼렙인 내가 핑 풀업을 고수인 언니 앞에서 해내야 하는데 배에 힘! 배에 힘!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파르르 몸을 떨었다. 철봉에 매달린 내 몸은 마치 A4용지나 다름없이 펄럭 펄럭 흔들렸는데 보호 파일 없이는 바람 부는 대로 가없이 움직이는 게 초록 밴드에 의지한 채 앞뒤로 움직이는 내 모습과 비슷했다. 탄력이 제일 좋다는 초록 밴드를 끼고도 계속해서 버거워하는 내 모습을 보자 언니가 외쳤다.

"배 좀 당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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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부터 저녁에 크로스핏을 가지 않았다. 앞서 말했던 러닝 크루에 나가 달리기를 시작했고 계속하고 싶은 마음 반, 가기 싫은 마음 반이었던 크로스핏에 대해서도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운동하는 곳을 옮겨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등록할 때부터 3개월 치를 끊었던 터라 내게는 약 10일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곧 죽어도 저녁엔 가기 싫은데 그때를 피한다면 갈 수 있는 시간대가 언제일까 고민 아침 시간, 또는 점심시간밖에 없었다. 아침 8시 반부터 9시 반, 오후 12시 반부터 1시 반. 갈팡질팡 고민하다 회사 점심시간과 겹쳐서인지 점심 수업 시간표에 유독 눈길이 갔다. 한 번 나가볼까 싶었던 게 시작이었다. 첫 단추를 잘 꿴 덕분에 그 후로 약 2년 간(물론 지금까지) 크로스핏을 계속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 생겨났고 지금도 그때의 선택은 정말 최선이었다고 본다.

러닝 크루에 처음 나갔을 때처럼 점심 크로스핏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그동안 도전하지 않아서 몰랐던 것뿐이지 그곳은 완전히 신세계였다. 일단 점심에 운동을 오는 인원 자체가 적었다. 그 덕분에 코치님께 집중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소수 인원들은 운동 또한 잘했다. 재야의 고수 느낌이었는데 잘한다고 뻐기지도 않고 잘못했다고 혼내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묵묵히 자기 운동을 제한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해 수행하는 득도인 느낌이었다. 그 속에서 운동하다 보면 나 또한 운동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경건해진다 해야 할까.

하루 중 직장인이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이라고 한다. 그렇게 기다려지는 시간에 밥 안 먹고 크로스핏에 온다는 건 웬만한 의지가 없으면 지켜내기 어려운 일이 틀림없다. 운동에 대한 의지로 똘똘 뭉친 사람이 아니라면 매 순간 죽을 만큼 힘든 크로스핏 운동을 하러 점심시간을 반납할  없었고 그런 강철 같은 의지력을  인간이  우리 크로스핏 박스에 몇 분 정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직장인이고 점심 대신 운동한 날들이 쌓이고 쌓여 이미 고수 반열에 올라있었다. 더블 언더 안 된다고 찡찡대고 풀업 안된다고 도망갔던 쪼렙이 보기에도 이들은 멋진 어른이었다. 그런 건강한 어른들 틈에서 교육받으며 이후로 내게도 꽤 긍정적인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은 회사 사람들이랑 밥 먹으면서 듣던 시댁 욕, 남편 욕, 와이프 흉 보기 같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들에 동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긍정적이었다. 그 외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직원에 대해 감 나라 배 나라 이야기하거나 맞장구치지 않아도 되니 정신 건강에 이로웠다. 

인간관계에 한 피로도를 겪던 터라 저녁 타임 대비 상대적으로 조용한 점심반 인원들과 함께하며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운동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좋았는데 실제로 우리는 매일 동일한 시간에 얼굴을 보는데도 어디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같은 개인적인 얘기에 대해서 일절 묻지 않았다. 아마 운동하고 곧장 복귀해야 하는 직장인이라 무언가를 물을 시간이 없었던 것도 한몫을 했던 것 같다. 

가장 큰 변화는 점심 크로스핏, 저녁 러닝을 통해 일상의 루틴이 생겨난 건데 그로 인해 스스로 좀 더 단단해졌고 몸과 마음이 이전보다 건강해졌다. 

낮에 크로스핏 하고 저녁에 달리는 습관 덕분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누가 뭐라든 쫄지 않을 만큼 맷집이 생겼고, 못한다는 말을 듣더라도 난 이거 아니어도 잘하는 게 있는데 얘기할 만큼의 자신감과 여유도 생겼다. 영국 시인 존 드라이든은 습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결국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

시간이 흐른 후 이러한 좋은 습관 형성에 계기를 제공해준 언니와 짓궂게도 또 같이 팀 운동을 하게 된 날이 있었다. 그때로 말미암아 일 년여가 지난 것 같은데 언니 입에서 환청 같은 소리를 듣게 됐다. 

"뭐야, 너 이제 나보다 더 풀업 잘하겠다." 

그때의 나는 탄력성이 제일 낮다는 검정 밴드로 풀업을 하고 있었다. 풀업 하는 도중에 그 말을 듣자 자꾸 웃음이 나서 봉을 잡던 손에 힘이 풀려 참느라 혼났다. 언니는 그 사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동남아에서 스쿠버 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따고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운동을 꽤 오래 쉬었고 쉰 공백만큼이나 계속해서 이어왔던 내 운동 능력은 이전보다 향상돼 있었다. 그래도 운동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서 크로스핏을 수년 한 언니보단 여러모로 모든 면에서 뒤처져있었는데, 말이야 나보다 더 풀업을 잘하겠다고 했지만 그 말의 뜻인 즉 이전보다 많이 늘었다는 칭찬이었다. 언니의 칭찬 덕분인지 아니면 정말 내 운동 능력이 향상돼서인지 우리는 꽤 만족스러운 기록으로 그 날의 팀 운동을 끝냈다. 

운동이 끝나고 언니에게 "수고하셨어요."라고 밝게 인사했다. 언니도 "수고했어! 잘하더라!"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너무 좋아서 방방 뛰면서 갔다. 포기하지 않으면 정말 이뤄지는구나. 놓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되는구나. 운동을 통해 진리를 깨달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렇게 마침내 쪼렙은 트라우마를 극복한 것이었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2018 원더우먼 페스티벌> 연단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남들이 나를 낮게 얘기하고 깎는 얘기를 하면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냐고 해요.
근데 저는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개그우먼 박나래가 있고 디제잉을 하는 박나래가 있고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까이는 거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거에 대해서 조금 이해가 안 되더라도 오케이 괜찮아. 디제잉하는 박나래가 있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실패할 수가 있잖아요. 그 실패가 인생의 실패처럼 느껴질 수가 있어요.
여러분은 한 사람이 아닌 거예요. 공부하는 누가 될 수도 있고 정말 다른 일을 하는 내가 될 수도 있고 우리는 여러 가지의 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걸 인지하고 있으면 하나가 실패하더라도 괜찮아요. 또 다른 내가 되면 되니까.

이 강연은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었고 나 또한 한 때 이 말이 너무 좋아서 거의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고를 반복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왜 이걸 못하지, 왜 난 재능이 없지, 잘하지도 못하는데 이걸 꼭 해야 하나. 이런 감정이 자기 자신에게서 오는 건지 남의 평가에서 오는 건지 요인은 다 다르겠지만 결국에 답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안 되는 걸 억지로 되게 하면 과부하. 안 될 땐 되는 것부터 하는 게 좋다. 

그렇게 매일매일 가던 크로스핏이 하루아침에 도망가고 싶어 지는 날이 왔듯이 좋아 마지않는 글쓰기도, 달리기도 어느 순간 싫어지는 때가 올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이 경험을 토대로 그것들을 놓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힘껏 도망갈 것이다. 달리기가 싫어질 때면 크로스핏으로, 크로스핏이 싫어질 때면 달리기로, 두 개 다 싫어질 때면 글쓰기로. 글쓰기조차 싫어질 때면 그림 그리기로. 생각보다 나라는 사람은 다양한 걸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정말로 중요한 건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지켜가는 게 중요한 거니까.

그러니 안 될 땐 되는 것부터 하자 제발.


슬기님의 브런치에 기고된 글을 플레이콕이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슬기

마케터

인생이라는 주로 위에서 자기 페이스대로 열심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버하지 않고 꾸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