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Her Story - 국가대표 투포환 선수 박봉식과 중고등학교 친구들

이상정 댕그마니

중학교에 올라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송구부 주장이었던 정광모는 졸업 후에 한국일보에 들어가 기자가 되었고 여기자의 표상이 되었다. 육상 선수로 당시 최고 기록을 남긴 장석호는 세브란스로 진학하여 의사가 되었다. 4명의 릴레이 선수 중 나는 첫째로 달렸고 장석호는 항상 마지막 주자로 뛰었다. 앞에서 실수를 하거나 잘 못 뛰어도 석호는 언제나 다른 팀을 따돌리고 여유 있게 도착했다.  후에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친구 심치선은 연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명예교수로 은퇴했다.  

운동을 함께한 친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박봉식은 최초의 여성 국가대표 선수였다. 주 종목은 투포환, 투원반이었는데 농구, 자전거, 육상, 스케이트 등 모든 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처음에 농구부에 들어왔고 육상부를 거쳐 주 종목으로 삼은 투포환을 했다. 우리도 곁에서 그 모습을 보며 투포환을 저런 식으로 던진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중국에서 유학을 왔는데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체육 교육을 그곳에서 받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광복 후, 조용하고 듬직했던 이 친구는 1948년 'KOREA' 마크를 달고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이 참가한 첫 올림픽인 제14회 런던 올림픽에 투포환 선수로 참가하여 18위를 차지했다. 올림픽에 참가한 단 한 명의 우리나라 첫 여자 선수였다. 실제 국내에서 남긴 기록은 세계 기록감인데 20박 21일간 9개국 12개 도시를 거쳐서 런던에 도착했으므로 쌓인 여독과 우여곡절의 사연들, 낯선 환경과 국제 무대에 대한 두려움으로 제 기량을 다 드러내지 못한 것 같아 무척 안타까웠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의 일원으로 이상훈 코치와 투포환의 봉식이가 런던으로 떠나기 전에 환송회를 열었고 커다란 꽃다발을 주었다. 멋진 친구를 두게 되어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봉식이는 졸업 후에 뇌수막염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기대했던 것만큼 성장한 후에 많은 활약을 보지 못해 못내 아쉽다.

1948년 KOREA마크를 달고 첫 출전하는 런던 올림픽, 선수 환송회. 이화여자중학교. 나는 첫 줄 맨 왼쪽. 이상훈 코치, 박봉식 선수. 
위 사진 뒷면 기록.
1948년 런던 올림픽 참가하는 농구팀의 이상훈, 투포환의 박봉식.
모든 운동을 잘했던 내 친구 박봉식. 투포환 선수로 올림픽에 참가한 우리나라 첫 여성 선수.
위 사진 뒷면 기록.
농구 대표팀 이상훈 선수(이화중학교 코치 겸 감독)와 박봉식 투포환 선수.
1948년 런던 올림픽 참가 선수 환송회.  박봉식, 이상훈 코치(오른쪽에서부터)
위 사진 뒷면 기록.
1948년 런던 올림픽 참가하는 나의 친구 박봉식(투포환 선수, 꽃다발 받은 선수), 이상훈 코치(남자 농구 대표팀).
송구 선수였던 친구 정광모. 후에 한국일보 기자가 되어 여기자들의 표상이 되었다.
내 친구 장석호. 당시 국내 최고 육상 기록 보유자. 세브란스 의대로 진학해서 후에 의사가 되었다. 
위 사진 뒷면 기록.






이상정님의 브런치에 기고된 글을 플레이콕이 한 번 더 소개합니다.

이상정

91세 엄마의 일생을 기록한다.
Her Story 엄마 이야기, My Story 딸이 본 엄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