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취미수집가를 위한 취미수집 도서 「쓸데없이 열심입니다」

조기준
쓸데없이 열심입니다 중 12. 배드민턴 한줄평: 당신을 믿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어스름한 새벽빛이 겨우 터올 무렵, 버스를 타야 했다. 지금 시각은 6시 10분. 일요일 새벽이라 그런지 버스 안은 무척 한산하다. ‘출근하기 싫어증’을 어깨에 한 짐 메는 월요일에도 그 시간에 집을 나서지 않았는데 일요일 새벽부터 웬 난리법석이란 말인가. ‘게다가 대중교통 할인이 가능한 시간대였다니.’


대회 장소까지는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서 50여 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물론 몽롱한 정신을 깨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늦가을이라 쌀쌀하지만 창문을 살짝 열어젖혀본다. 새벽 찬바람이 훅 몰아치지만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오늘은 1승만이라도 해야겠다는 다짐이 조금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아침 7시 30분에 첫 경기. 아이고야, 맙소사, 할렐루야. 파트너가 없었다면 분명 잠 좀 더 자고 싶은 수면 욕구를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제아무리 전날 밤 10시부터 잠들고자 애썼을지라도, 평소와는 다른 취침 시간이라 몸에서도 자동 거부 반응이 일어났다. 스마트폰 불빛 때문에 수면 방해를 받고 싶지는 않아서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정말 쌍팔년도 영화에서처럼 양들을 세어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울타리를 뛰어넘는 앙증맞은 양들이 등장했다. 약 157마리 정도까지 세었을까? 그런데도 잠은 오지 않았다. ‘불면증이 뭐예요?’를 되뇌며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1분 안에 잠드는 나였지만, 습관화된 시간대가 아닌 데다 긴장감이 스멀스멀 어우러져 도통 잠들 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며 거실에 둔 시곗바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까? “째깍, 째깍, 째깍.” 결국 최면에 걸린 듯 그 소리에 잠이 들었나 보다. 눈 떠보니 새벽이었으니까.


단식 출전이었다면, 기권이라도 했을 텐데. 그런데 내게는 파트너가 있다. 그가 도착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역시 1승에 대한 갈망이 무척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꾸역꾸역 일어나야 했고, 반 좀비 상태로 대회장까지 가야 했다. 창밖은 이제 새벽이 아니라 아침을 알리고 있었다. 일요일인데도 그 시간대에 다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물론 일요일 아침이었기에 밤새 클러빙을 했거나, 5차까지 술을 진탕 마신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들은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 속 좀비 못지않은 표정으로 길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것일 수도 있었을 터이니. 



대회장에 도착했다. 나의 파트너는 아직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받질 않았다. ‘뭐지, 이건. 이 시추에이션은.’ 왠지 나만 손해 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대회는 7시 30분부터인데. 아침부터 쳐야 하는 것도 억울한데 파트너마저 오지 않으면 난 뭐 하나 해보지도 못하고 실격이라 아침 댓바람부터 분통을 터뜨리며 캔맥주 까고 맨바닥에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뻣뻣하게 굳어 있는 몸을 가볍게 풀기 시작했다. 온몸이 쑤시고 아프고…. 나이가 들었으니까 어쩔 수 없겠지라며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을 때쯤 파트너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안 미안, 지금 열심히 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네. 아직 20여 분 남았으니 천천히 오세요.”


광속으로 왔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어쩌겠는가,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니. 그렇다. 배드민턴이라는 운동은 기본적으로 복식경기이다. 어찌 보면 사회의 축소판인 듯하다. 나 혼자서만 할 수 없는 경기. 상대방을 배려하고 시간이든 경기 운영이든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 경기 중에는 즉흥적으로 전략도 짜야 한다. 정말 딱 사회의 모습 그대로이다. 호흡이 맞지 않으면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점에서도 일맥상통한다. 


드디어 도착했다. 역시나 우리 둘은 1승이 목표였다. 보자마자 나누는 인사였으니. 하는 둥 마는 둥이지만 파트너의 어깨를 열심히 주물러 본다. ‘오늘 잘해 보자고. 꼭 1승은 하자고. 3승 중에 1승, 첫걸음이 중요하다고.’ 


내게는 첫 대회 출전이었다. 그러니 긴장감이 클 것이다. 우리 순서였다. 코트에 들어섰다. 함께 운동하는 동호회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입장했다. 시작 전, 파트너와 간단하게 전략을 짰다.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스매싱이나 하이 클리어를 잘하고, 헤어핀도 적재적소에 놓을 줄 알아야 한다. 늘 동호회에서 듣던 이야기였다. 몸이 부서져라 레슨을 받을 때 코치가 늘 지적하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전은 다르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몸이 반응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우리 쪽에서 첫 서브를 넣는다. 지금 상황은 모든 것이 처음이다. 그 순간순간이 내 인생의 처음인 것처럼.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건너편 선수들조차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처음인데 서브도 첫 서브이다. 얼마나 긴장되겠는가. 뒤에서 누군가가 응원을 해주는데 “하던 대로만 하면 돼”라고 외친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던 대로만 되면 1승은 문제없을 텐데. 


서브를 넣었다. 다행히 네트를 살짝 넘어갔다. 상대편에서 셔틀콕을 걷어 올린다. 소위 ‘배드민턴 좀 친다’면서 약수터나 공원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건 경기이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은 아니지만, 더불어 나는 이용대는 아니지만, 마음만은 이미 이용대 못지않다. 이기고 싶은 갈망이 터져 나오고 있으니까. 내 몸속 아드레날린도 마구 터져 나오고 있을 것이다. 



파트너와 서로를 배려하며 서로의 포지션을 체크하며 랠리가 이어진다. 나는 스매싱을 때린다. 상대편이 리시브를 꽤나 잘한다. 멈칫하는 사이에 셔틀콕이 예상과는 반대쪽으로 이동한다. 파트너가 얼른 쫓아가서 하이클리어로 밀어낸다. 셔틀콕은 춤을 추듯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아차, 하는 실수 속에 우리 편이 1점을 잃었다.


상대편에서는 파이팅이 터져 나오고 우리는 약간 움찔한다. 다음 서브는 상대편이다. 서브가 잘못 들어와서 역공격 할 수 있는 타이밍을 0.00001초 만에 판단해내고는 득점에 성공.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탄성, “아자”.


배드민턴은 이런 운동이다. 나부터 물론 잘해야 하지만, 나만 잘한다고 되는 운동이 아니다. 나의 파트너도 중요하다. 오랫동안 함께 호흡하며 연습 중에 맞춰보고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윈윈 할 테니까. 전략도 잘 짜야 한다. 정말로 사회를 그대로 줄여놓은 듯하고,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상대편도 빨리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분명 두 사람 중에 조금 더 약한 한 명이 있을 것이다. 이기려면 그쪽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하지만 마음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미안함과 승부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리얼한 운동이라니.’ 


그래서 배드민턴이 좋다. 잘하지는 못해도 5년 정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한 코트 안에서 둘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니까. 혼자 하는 것에만 줄곧 익숙해져 가는 나이지만,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아이러니한 변명 같지만 배드민턴을 통해 ‘나’만이 아니라, ‘당신’을 배려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었다. 



실수하더라도 화내거나 실망하지 않고, 악수하며 파이팅을 외친다. 경기에서 밀리는 와중에도 다시 한번 파이팅을 외친다. 그리고는 전략을 긴급하게 수정한 뒤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그 짧은 시간에 찾아낸다. 코치가 늘 지적했던 부분을 점검도 해본다. ‘맞다, 이렇게 해보자.’


밀리던 점수 차가 한껏 줄어든다. 서로가 서로를 더욱 믿고서 밀당하듯 경기를 운영해 나간다. 마지막 매치포인트. 점수 차는 3점. 마지막 스매싱이 네트를 넘어서 바닥으로 내리꽂는다. 누군가에게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서로 얼싸안고 또다시 지겹게만 들리던 파이팅을 외치며 경기는 끝난다. 이겼든 졌든 나의 배드민턴 삶에서 첫 번째 경기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정말 나는 이겼을까, 졌을까? 그렇게 간절했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그런 것보다는 파트너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를 믿고 파트너가 되어준 당신에게 고맙다. 이제는 두 번째 경기를 준비해야 한다. 약 한 시간 후. 배드민턴 경기장은 그렇게 수많은 파트너들로 북적거린다. 누군가는 승리하고 누군가는 패하겠지만, 그래도 서로를 믿고 의지한 채 경기는 계속된다.     



쓸데없이 열심입니다 취미가 취미인 취미 수집가의 집념의 취미생활

쓸데없이 열심입니다 | 취미가 취미인 취미 수집가의 집념의 취미생활

조기준

작가, 에디터, 인디밴드 ‘체리립스’ 리더 겸 베이시스트, 칼럼니스트, 방송 패널, 강연가, 인플루언서. (많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살면서, 그에 대한 책임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멀티 플레이어이자 도시형 노마드. 쓸데없이 열심이지만 어느 날 문득 ‘하기 싫어 죽겠어’를 동네방네 떠나가라 쉴 새 없이 외친다. ‘나답게 신나게 살래요’가 좌우명이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확실히 구분할 줄 아는 두 번째 스무 살(더하기 몇 살 더). 쇼팽과 차이콥스키, 이적과 브라운아이드소울을 즐겨듣고, 윤동주와 톰 포드, 잭 케루악을 좋아한다. 드라마 [소울메이트]와 영화 [쉘부르의 우산]을 그리워한다. 《밤 열두 시, 나의 도시》, 《내 나이 벌써 마흔인데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어》를 썼으며 [눕다], [동경방랑자]라는 곡을 작사,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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